근래 본 영화 중에서 가장 감명 깊은 여운을 남긴 작품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라이프 오브 파이 (Life of Pie, 2012)>를 선택하겠다.

고전 명작의 재림 <레미제라블 (Le Miserables, 2012)>의 감동은 화려하지만 꿈 같이도 먼 과거의 산물일 뿐이고 <호빗 : 뜻 밖의 여정 (The Hobbit: An Unexpected Journey, 2012)>의 환상적이고 멋진 모험담 역시 상상 속의 신기루일 뿐이겠지만,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비춰주는 파이의 표류기는 시간이 흐르면 흐를 수록, 곱씹어대면 곱씹어댈 수록 정말인지 끝나지 않는 무수한 생각들과 교훈을 풀어낼 수 있는 엄청난 영화인 것이다.


<라이프 오브 파이>는 소년이 성장해나가면서 겪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유하고 안정적이였던 삶, 행복했던 가족, 사랑하는 연인, 미래에 대한 희망과 신들에게 의지하며 지탱해왔던 신념들을 산산히 파괴 당한 파이 파텔,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죽음과 홀로 맞서 싸우며 태평양에 표류했던 시간 속에서 파이는 자신이 알고 지냈던 모든 것들과의 관계를 다시금 쌓아가기 시작한다.


안타깝게도 <라이프 오브 파이>의 내용은 결코 긍정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이지만은 않다. 이 영화 속에서 나이 든 파이 파텔이 들려주는 메르헨은 자기자신과 작품을 보는 관객들을 위한 이야기이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이에 대한 믿음은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몫이 될 것이다.


영화의 감독 이안(Ang Lee)는 <색, 계 (Lust, Caution, 2007)>와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 2005)>을 만들었다.

모두 매우 유명한 영화이고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작품들이다. 본인은 아직 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구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라이프 오브 파이>가 굉장히 '이국적인' 향취가 가득한 영화임을 말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여타 할리우드의 영화들과는 다르게 <라이프 오브 파이>는 인도의 프랑스 마을과 태평양, 캐나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며 일본인과 아프리카 동물들, 그리고 인도인이 출현한다.

그리고 감독은 대만 사람이다.


위와 같은 상황 때문인지 안그래도 아름답고 환상적인 연출은 더욱 빛깔 넘치게 받아들여진다.

<라이프 오브 파이>의 색채는 반짝이는 검은 파도들과 형형색색의 발광체들이 수를 놓으며 대게의 장면이 구명보트와 뗏목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바다 표면에 비치는 우주와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굉장히 기묘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태평양 표류기라는 내용을 보고 <캐스트 어웨이 (Cast Away, 2000)>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의 감동은 만족스러울 것이다.


결말에 다다르면 충격에 어안이 벙벙해지는 영화.

도저히 어찌해야 할 방법을 모를 정도로 복잡미묘한 혼란을 심어주지만 그것조차 매력적인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가능하다면 이 영화는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과 함께 보러 가는 것을 권장한다.

<라이프 오브 파이>에 대한 이야기로 새벽내내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파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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